AI 시대, 애덤 스미스 국부론의 한국적 재해석

애덤 스미스 국부론, AI 시대 대한민국 경제 철학을 묻다

철학이라는 단어는 때론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 본질은 우리의 삶과 사회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AI 시대, 애덤 스미스 국부론의 한국적 재해석 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서구 문명의 발전사를 관통하고, AI 시대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는 놀라운 여정을 떠나고자 합니다. 이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함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합니다.





서구 문명의 남성적 합리화와 ‘펜톤 컬러칩’

서구 문명은 산업화를 거치며 ‘남성적 합리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정량화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로 분석하며, 테이블화하는 데 능숙한 방식이죠. 예를 들어,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색상을 표준화하는 ‘펜톤 컬러칩’은 이러한 정량화의 성공적인 모델입니다. 펜톤은 색상마다 고유 번호를 부여하여 전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색상을 구현할 수 있는 ‘색상의 에스페란토’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산업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화와 효율성을 극대화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펜톤 컬러칩을 든 교수가 미래 도시를 바라보는 이미지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유인원 연구의 선구자인 제인 구달은 침팬지 한 마리 한 마리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깊이 있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녀 이전의 남성 연구자들이 망원경으로 멀리서 침팬지를 관찰하며 데이터를 정량화하는 ‘관찰자적 관점’을 취했다면, 구달은 침팬지 무리의 일원이 되어 내밀한 관계를 맺는 ‘참여자적 관점’으로 동물 행동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는 정량화 너머의 감성과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현대 기술과 경제 그래프에 둘러싸인 애덤 스미스 학자의 모습

AI 시대, 새로운 관계적 접근의 필요성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산업화 시대의 계량적 사고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AI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정량화와 데이터 처리를 압도적으로 뛰어넘습니다. 따라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 즉 관계 맺는 능력과 감성을 통해 AI를 도구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는 제인 구달의 방식처럼, 객관적인 거리 두기보다 참여하고 공감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와 ‘조변석개’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AI 시대가 요구하는 속도와 잘 맞아떨어지며, 인류가 AI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글로벌 AI 기업과 과학자들이 한국을 중요한 테스트베드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경제 민주주의의 탐색

AI 시대에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수공업 시대에는 창업자와 장인이 기업의 주인이었으며, 기술을 가진 장인은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를 가졌습니다. 당시 어른들이 ‘기술 하나 배우면 굶어 죽지 않는다’고 말했던 배경이죠.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특정 자본가들이 부를 독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식회사 제도가 등장하면서 산업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가 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 자본주의가 생산 과정과 부가 가치 분배에서의 민주주의, 즉 ‘산업 민주주의’를 강조했다면, 금융 자본주의는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통제되지 않은 금융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독일과 같은 나라는 경제 전반의 민주적 통제를 아우르는 ‘경제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산업과 금융 모두를 포괄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한국 또한 이러한 경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기업의 소유 구조를 재고해야 합니다.

국민 주주와 AI 국부 펀드: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

그렇다면 AI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기업은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할까요? IMF 사태 당시 삼성, 현대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국내 100대 기업은 단순히 주주만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업’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현 정부는 2가지 중요한 방안을 제시합니다.
첫째, AI 산업과 관련하여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국부 펀드’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AI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고 GPU를 사들이지만, 그 혜택은 주로 기업에 돌아갑니다. AI가 발전하면서 많은 직종이 사라질 것이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에게 AI 생산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은 정당한 분배입니다. 이것이 바로 AI와 기본 소득이 맞물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대 기술과 경제 그래프에 둘러싸인 애덤 스미스 학자의 모습

둘째, 코스피 상위 기업들을 대상으로 국부 펀드를 조성하여 전 국민에게 ETF 형태로 지급하자는 제안입니다. 기업의 가치는 그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기에, 역세권의 지가가 오르는 것에 개인이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다음 세대에게 ‘디딤돌’을 제공하여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재해석: 국부의 원천은 노동

이러한 논의의 역사적 뿌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였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한 나라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라고 명시했습니다. 즉, 국부의 원천이 화폐, 특히 금은동과 같은 중상주의적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노동’에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와 프랑스의 중농주의에 반하는 급진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스미스는 노동이 분할될수록 더 큰 생산력을 낳고,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곧 국부를 키우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과도한 개입(예: 관세)을 반대하고 국제 분업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일부 금융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애덤 스미스를 잘못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의 사상의 핵심은 분명히 노동의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AI 시대의 기본 소득과 국부 펀드 논의에 중요한 철학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노동 생산성 향상과 다극 체제 전환

애덤 스미스의 노동 생산성 개념은 오늘날 한국 경제에도 큰 시사점을 줍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노동 생산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수도권 일극화’입니다. 모든 인프라와 기회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은 소멸 위기에 직면하고, 이는 국가 전체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첫째, AI 시대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둘째,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다극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전남 해남에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는 것과 같은 지방 분산 투자는 이러한 다극 체제 전환의 중요한 시발점입니다. 수도권처럼 거대한 네트워크 경제권을 지방에도 만들어, 개별 도시들이 서로 연결되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주, 강원, 전북과 같은 ‘삼특’ 지역은 고유의 특색을 살려 특화된 지구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균형 발전 전략은 장기적으로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국부를 증진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제인 구달처럼 침팬지를 관찰하는 여성 과학자

AI 시대의 현실과 한국의 기회

AI 기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우리 일상과 경제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IT 및 컨설팅 회사들이 AI 도입으로 인해 인력을 감축하고 있으며,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기업의 비용 구조와 생산성을 혁신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AI 주권(AI Sovereign)’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매우 선견지명 있는 결정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AI 주권을 천명하고 추진하는 사례는 드뭅니다.

한국은 과거 일본이 자동차 산업에서 독일을 추월하고, 중국이 내연기관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전기차와 자율주행 시대로 진입했던 것처럼, AI 시대에도 빠른 전환과 혁신을 통해 세계를 선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공장 유치와 같은 산업화 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반면, 한국은 AI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빠른 판단과 실행력은 한국이 가진 ‘냄비 근성’이 시대의 장점으로 승화되는 순간입니다.





대한민국의 운명, 그리고 새로운 철학

지난 1년여간의 국내외 정세를 되짚어보면, 대한민국은 놀라운 위기관리 능력과 함께 ‘운’까지 따라주는 형국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했지만,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극단적인 외교 정책은 한국이 역설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유연성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중국이 처음으로 독도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었던 것은 이러한 외교적 변화의 단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과거 미국과 유럽을 롤 모델 삼아 빠르게 추격했지만, 이제 더 이상 따라갈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선두 주자’의 위치에 섰습니다. 이러한 외로운 상황에서 이재명과 같은 리더십이 대한민국을 AI 시대의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있다는 인상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국민의 정치적 의지가 현실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민주주의 역량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의 ‘속살’을 다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이러한 국민적 역량을 바탕으로 결국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철학적 사유는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다음 달에 더 깊이 있는 경제 철학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