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관광지이자 첨단 기술의 상징입니다. 그 화려하고 정돈된 모습 뒤에는 오랜 역사와 사회적 배경이 얽힌, 여전히 깊이 뿌리내린 금기들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숨겨진 금기: 브라쿠민, 천황가, 야쿠자 이야기 에 대해 알아보려합니다. 일본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3 가지 주제, 즉 ‘브라쿠민’, ‘천황가’, ‘야쿠자’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일본의 다면적인 모습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브라쿠민: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의 그림자

일본 사회에서 ‘브라쿠민(部落民)’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거운 침묵과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브라쿠민은 과거 일본 봉건사회에서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직업, 예를 들어 가축 도살이나 가죽 가공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후예들을 지칭합니다. 한국의 백정이나 천민과 유사하게, 역사적으로 이들은 사회의 최하층으로 분류되어 심한 멸시와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많은 브라쿠민 후예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브라쿠민이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학교에서 자신들의 직업을 말하는 것을 꺼리거나, 결혼 시 상대방 집안에서 브라쿠민 출신임을 알게 되면 파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호적등본”과 같은 문서가 한때 개인의 출신을 명확히 드러내는 역할을 했고, 이는 차별의 근거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 정부는 이러한 호적 열람을 제한하는 등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비밀리에 유통되는 명단이나 암묵적인 차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일본 인구의 약 2%에 해당하는 300만 명 정도가 브라쿠민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차별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일본 사회가 과거의 유산을 얼마나 깊이 간직하고 있으며, 인권과 사회 통합이라는 과제가 아직 진행 중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 금기 사항”, “브라쿠민 차별”, “일본 사회 문제” 등의 키워드를 통해 이 주제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넘어 현재 진행형인 사회적 고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황가: 신성불가침의 베일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뇌

일본에서 ‘천황가(天皇)’는 국민 통합의 상징이자 신성시되는 존재입니다. 천황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일본 문화와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신성불가침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 사회에서는 천황가에 대한 특정 주제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합니다. 특히 천황가의 스캔들이나 사적인 감정은 언론에서 다루는 것조차 엄격하게 통제됩니다. “일본 천황가”, “궁내청”이라는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정부 내에는 ‘궁내청’이라는 특별한 기관이 존재하여 천황가를 보좌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언론 보도를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금기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습니다.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의 자녀들, 특히 마코 공주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마코 공주는 기존 왕가가 정해놓은 엘리트 코스(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를 벗어나 국제기독교대학을 선택하고, 왕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일반인과 결혼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천황가의 역사상 전례 없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많은 일본인에게 놀라움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나루히토 일왕의 부인 마사코 황후가 아들 대신 딸인 아이코 공주만을 낳았을 때, ‘남성만이 천황이 될 수 있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황위 계승 원칙 때문에 비합리적인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천황가가 개인으로서의 삶보다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강요받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천황은 메이지 시대부터 국가 통치를 위한 ‘명예롭고 사리사욕 없는 성군’으로 만들어져 왔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의 교육은 오로지 ‘왕으로서, 왕가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러한 금기를 깬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아키히토 상황(전임 천황)의 양위였습니다. 보통 천황은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관례였지만, 아키히토 상황은 자신의 건강과 나이가 들어가는 나루히토 황태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양위를 희망했습니다. 이는 천황 스스로 자신의 ‘희망’을 처음으로 입 밖에 낸 사건으로, 일본 전역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처럼 천황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조금씩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고 있는 중입니다. 이는 “일본 문화”, “일본 왕실”과 같은 키워드를 통해 더 깊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야쿠자: 일본 사회의 이중적 얼굴

한국의 ‘조폭’과 유사한 개념인 일본의 ‘야쿠자’는 조직범죄 집단으로, 일본 사회에서 언급하기 꺼려지는 또 다른 금기입니다. 대중은 야쿠자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언론인들이 야쿠자를 비방하거나 뉴스화할 경우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습니다.
야쿠자 조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은 ‘야마구치구미(山口組)’입니다. 최근에는 여러 파벌로 분열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주요 야쿠자 조직들이 ‘재일 한국인’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자국 내 조선인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려 했습니다. 이때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고 법적 권리를 잃은 재일 한국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체적인 조직을 만들거나 기존 조직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처럼 야쿠자의 역사와 재일 한국인의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며, 이는 일본 사회에서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민감한 주제입니다.
야쿠자에게는 특이한 ‘원칙’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야쿠자가 아닌 일반인을 해치거나 사기를 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물론 이 원칙은 시대가 변하고 야쿠자 조직이 일반 회사의 형태로 위장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희석되고 있지만, 한때는 이들의 내부 규범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행동하며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여전히 두려움과 경멸의 대상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야쿠자에 대한 언급을 더욱 금기시하게 만듭니다.
“일본 야쿠자”, “재일 한국인 역사”, “일본 사회 금기” 등의 키워드를 통해 이 주제는 일본의 어두운 이면과 복잡한 사회적 연결고리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범죄 조직을 넘어, 역사적 배경과 민족 문제까지 얽혀 있는 야쿠자의 존재는 일본 사회의 숨겨진 금기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이고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기를 넘어, 일본 사회의 진정한 이해로

오늘은 일본의 숨겨진 금기: 브라쿠민 천황가 야쿠자 이야기 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브라쿠민의 오랜 차별, 천황가의 신성불가침 뒤에 가려진 인간적 고뇌, 그리고 야쿠자와 재일 한국인의 복잡한 역사적 연결고리는 일본 사회의 표면 아래 흐르는 깊은 강물과 같습니다. 이 세 가지 금기들은 일본의 역사, 문화, 그리고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단순히 표면적인 정보만을 접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금기들이 형성되고 유지되며 변화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다 입체적이고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대화할 때, 비로소 진정한 발전과 화합이 시작될 수 있음을 일본의 금기들이 우리에게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단순히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가 안고 있는 차별, 권력, 그리고 소수자 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역시 우리 사회의 ‘금기’들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건강한 담론을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