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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설문에서 응답자의 약 86.7%가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답했고,
그 원인 1위는 업무량이 아니라 상사·동료와의 인간관계(약 25.2%)였다.1
불편한 감정은 대개 이 관계의 틈에서 자라난다. 이 글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 대신,
(1) 감정을 억누르면 왜 더 커지는지, (2) 인정·전달·경계 설정으로 표현하는 순서, (3) 감정 일기와
AI 챗봇 같은 보조 도구의 근거와 한계를 차례로 정리한다.
직장 스트레스 1순위가 ‘인간관계’인 이유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은 업무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 더 다루기 어렵다. 특정 동료의 말투,
반복되는 부탁, 회의에서의 무시 — 하나하나는 사소해 보여서 “예민한 걸까” 하고 넘기기 쉽다.
문제는 넘긴다고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리되지 않은 불편함은 기억에 남아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활성화되고,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조용히 누적된다.
그래서 “참으면 무난하다”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만 통한다. 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내부에서는
긴장과 경계가 쌓이고, 어느 순간 사소한 자극에 과하게 반응하게 된다. 관계를 지키려던 억제가
오히려 관계를 흔드는 역설이다. 국내 직장인의 장시간 근로와 높은 스트레스 수준은 국제 비교에서도
꾸준히 지적되는 배경으로,6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개인의 예민함만으로
돌리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이 깔려 있다.
감정을 억누르면 무슨 일이 생기나
감정 억압이 무해한 습관이 아니라는 근거는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감정노동과 분노 억제·반추를
함께 살핀 국내 간호사 대상 연구에서는, 화를 억누르고 곱씹는 경향이 강할수록 우울·불안
수준이 높아지는 매개 관계가 보고됐다.2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 — 피로, 신체 증상, 예상치 못한 폭발 — 로 새어 나온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특정 동료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불편한데도 매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상대는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다 한계에 도달한 쪽이 갑작스럽게 반응하면 상대는 영문을 모른 채
놀라고, 관계는 오히려 더 나빠진다. 억제 자체가 목적이 되면 신뢰의 토대가 얇아진다.
첫 단계는 ‘표현’이 아니라 ‘인정’
불편함을 다루는 출발점은 상대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불편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데 있다. “나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라고 속으로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강도가 한 단계 내려간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 자체가 뇌의 반응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이 원리는 분노와 두려움을 다스리는 뇌과학 관점에서도 다뤄진다.
인정을 건너뛰고 곧장 표현하면 감정이 정제되지 않은 채 새어 나온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 불편함의 진짜 원인 — 존중받지 못한 느낌인지, 경계가 침범된 것인지 —
을 구분해두면 다음 단계인 전달이 훨씬 정확해진다.
공격하지 않고 전달하기 — ‘나-전달법’
감정을 전할 때 흔한 실수는 “당신은 왜 항상…”으로 시작하는 너-전달(비난형)이다.
이 말투는 상대를 즉시 방어 태세로 만든다. 대안은 주어를 나로 바꾸는 나-전달법(I-message)이다.
“~한 상황일 때(사실), 나는 ~하게 느낀다(감정), 왜냐하면 ~가 필요하기 때문이다(필요)“의
구조로 말하면 비난 없이 내 상태를 전할 수 있다.5
실제 문장은 부드러울수록 좋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조금 조율이
필요한 지점이 있어요”처럼 완곡하게 열면 상대의 거부감이 줄고, 요구가 아니라 대화의
초대가 된다. 주장적(assertive) 의사소통의 목표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고
이해를 넓히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톤을 잡기 쉽다. 반대로 목소리를 키우거나 상대의 인격을
건드리면 그것은 주장이 아니라 공격이 되어, 원래 전하려던 내용은 묻히고 감정만 남는다.
사실 “이번 주에 세 번째로 마감 직전에 추가 업무를 받았을 때” →
감정 “제 계획이 계속 밀려서 당황스럽고 지쳤어요” →
필요 “미리 알려주시면 제가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난 없이 사실·감정·필요만 담아 한 호흡에 전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계 설정 — 감당할 범위를 미리 정한다
매번 즉흥적으로 반응하면 지친다. 그래서 표현만큼 중요한 것이 사전에 내 경계를 정해두는
일이다.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부터는 부담인지 스스로 선을 그어두면, 그 선을 넘는 요청이
왔을 때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담담하게 거절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경계는 벽이 아니라 관계의 규칙이다. “금요일 저녁 이후에는 업무 연락을 확인하지 않는다” 같은
구체적 기준을 정하고 일관되게 지키면, 상대도 예측 가능성을 얻어 불필요한 마찰이 줄어든다.
경계를 명확히 할수록 오히려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줄고 관계는 단순해진다.
경계 설정에서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은 죄책감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거절을 막는다. 그러나 모든 요청을 다 받아주는 사람은 결국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소진된다. 경계를 지키는 것은 관계를 끊는 일이 아니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지속 조건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
감정 일기 — 써서 정리하는 힘

상대에게 바로 말하기 어려울 때는 종이가 대신 들어준다.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 연구의
고전적 방식은 3~4일간 하루 15~20분씩, 문법을 신경 쓰지 말고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이 방식을 검토한 문헌들에서 참여자들은 불안·우울·통증·혈압 지표의 개선과
병원 방문 감소가 관찰됐다고 보고됐다.3
핵심은 글씨나 분량이 아니라 정리 과정이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이
진짜 문제였는지를 쓰다 보면 원인이 또렷해지고, 실제 대화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예행연습도 된다.
쓰는 직후에는 잠시 마음이 무거울 수 있지만, 대체로 그 효과는 짧고 이후의 정리 효과가 더 크다고
보고된다.3
AI 챗봇에 털어놓기 — 어디까지 도움이 될까
최근에는 AI 챗봇에 감정을 털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평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감정 일기와 비슷한 정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 원리를 적용한 챗봇을
쓴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는 6주 시점에 우울·불안 점수가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더 감소한
결과가 보고됐고,4 여러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서도 단기간의 증상 감소
효과가 관찰됐다.4
다만 챗봇은 정리·환기를 돕는 보조 수단이지 치료가 아니다. 근거 대부분이 경증·단기
개입에 집중돼 있고, 위기 상황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자·타해 생각이나 심각한 우울이 있을 때는
사람 전문가에게 연결되는 것이 우선이다.
도구가 일기든 챗봇이든, 공통 원리는 같다. 감정을 밖으로 꺼내 언어로 바꾸는 과정
자체가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 자신에게 맞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부담 없이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 골라 꾸준히 하는 편이 새로운 기법을 자주 바꾸는 것보다 낫다.
결론 — 4주간 이 지표를 관찰하라
감정 표현은 “솔직해지자”는 다짐이 아니라 연습으로 만들어지는 습관이다. 앞으로
4주간 다음을 기록해보자.
- 이번 주 참고 넘긴 불편함은 몇 번이었나 (상황·상대)
- 그중 나-전달법으로 실제 표현한 것은 몇 번인가
- 미리 정해둔 경계를 지킨 횟수
- 주간 감정 일기 작성 일수와, 쓴 뒤 마음의 강도 변화(1~10)
4주 뒤에도 특정 관계의 불편함이 줄지 않거나 우울·불안·불면이 이어진다면, 혼자 버티기보다
전문가 상담을 함께 고려한다. 감정을 다루는 일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의 문제이고, 기술은 반복으로
나아진다.
- 직장인 약 86.7% 스트레스 경험·원인 1위 ‘상사·동료와의 인간관계(약 25.2%)’ — 직장인 설문 보도.
매일노동뉴스 - 분노 억제·반추가 우울·불안과 연관 — 감정노동 매개 연구(국내 간호사 대상).
PMC6427706 - 표현적 글쓰기(3~4일·15~20분)의 불안·우울·통증·혈압 개선 및 병원 방문 감소 — 리뷰.
Baikie & Wilhelm 2005 (Stanford SPARQ) ·
APA - CBT 기반 대화형 챗봇(Woebot)의 우울·불안 감소 RCT 및 메타분석 — 6주 유의 감소.
2 Minute Medicine ·
Frontiers in Psychiatry 2025 - 나-전달법(I-message)·주장적 의사소통 원리 — 심리 자료.
Psychology Tools - 한국 직장인 스트레스·장시간 근로 맥락(OECD 비교) — 보도.
SBS Biz
※ 수치·연구 결과는 인용 시점 기준이며, 개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